그러다 보니 여름휴가를 굳이 외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3년 전쯤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갔으나 딸 아이는 유학하고 있는 뉴욕의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 휴가 마지막 3일 정도를 앞당겨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고, 그 3일을 아내는 뉴욕에서 관광을 했고 난 뉴욕은 몇 차례 들른 적이 있는 터라 친구와 뉴욕과 뉴저지 인근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그런데 친구가 골프장을 가기 전날 나를 골프 샵에 데려가더니 골프 클럽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 혼마가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이었는지, 혼마 아이언 세트를 작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샀다.

흔한 미국산 클럽 보다 가격이 족히 두 배는 넘었다. 그래서 내가 왜 갑자기 비싼 클럽을 사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내가 클럽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필요할 것 같다며 그것으로 다음날부터 골프를 치라는 것이었다. 몇 번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어차피 클럽이 필요한 터라 어쩌지 못하고 친구가 하는 대로 두었다. 다행히 드라이버와 우드, 퍼트는 여분이 있어 그것으로 구색을 맞추니 그런대로 캐디백이 완성되긴 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 당시보다 4년 전쯤 내가 그 친구와 미국에서, 골프만 줄곧 8일 정도 쳤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내가 홀로 미국으로 가면서 골프 가방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골프 치는데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가족 여행이었고 서부를 들렀다가 동부로 갔기 때문에 여행 내내 골프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 골프 가방을 챙기지 않았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친구한테 폐를 끼치고 말았다. 친구가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나 때문에 골프 클럽을 구입하느라 돈을 쓰게 된 점이 미안했다.

이듬해 그 친구는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 때 나하고 골프를 칠 때는 자기의 골프 가방을 가지고 와서 라운딩을 했다. 아마도 골프 가방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내가 골프 클럽이라도 구입할 까봐서 배려한 듯했다.
 

한때 우리는 외국 여행을 할 때 골프 가방을 가지고 가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생각한 때도 있었다. 사업자들은 세무조사를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였다. 그래서 외국으로 휴가를 가고 또 그곳에서 골프를 치려고 해도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골프 클럽을 가지고 가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 라운딩을 하려면 비싼 골프 클럽 렌트비를 물어야 했고 손에 익지 않은 클럽 때문에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제는 인천 공항에서 카트를 끌고 입국하는 사람들의 짐에는 골프 가방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아예 골프 여행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 여행이나 업무로 출장을 가서 짬을 내서 골프를 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일부 사람에게는 아직도 사치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외국에서 골프를 한번이라도 치고 올 계획이었다면 자기의 골프 클럽을 가지고 가는 것이 달러도 아끼고 또 손에 익숙한 클럽으로 라운딩을 함으로써 재미도 더 있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떠날 것이다. 외국의 부자들은 휴가때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다니거나 호화 요트를 타고 다니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는 하지만 질시나 시샘을 하지 않는듯 하다. 우리나라도 이젠 경제 수준이 향상돼 골프를 칠 줄 아는 사람이 1,000만명이 됐다.

그러니 만큼 골프를 안치는 사람이 골프를 치는 사람을 질시할 필요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처럼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정당한 부의 축적’을 통해서 취미로 골프를 즐길 수 있다면 남들 눈치 보느라 골프 가방을 가지고 가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7월 1일 메이저 대회 3연승을 올린 박인비 선수에게 축전을 통해 치하를 했다. 박 대통령은 이 축전에서 “LPGA US 여자오픈 우승으로 63년 만의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을 국민과 함께 축하합니다”라며 “앞으로도 이 열정과 꿈이 계속 승전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축전은 박인비 선수는 물론이고 골프 선수나 선수 지망생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은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 수석비서관으로부터 “공무원이 여름 휴가 때 골프를 쳐도 되느냐?”는 물음을 받자 “자기 비용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사람과 쳐도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직자의 골프는 항상 많은 사람의 도마위에 오르곤 했다. 골프 그 자체 보다도 그것이 ‘접대’와 ‘로비’가 겹치면서 부작용을 빚은 탓이다. 때로는 국가적으로 위중한 시기에 골프를 침으로써 ‘한가롭다’라는 시기적 부적절성도 지적됐다. 그것도 극히 일부 공무원 탓이 크다.

그래서 였는지 허태열 비서실장은 당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덧붙여 “가급적 골프 코스 대신 스크린골프를 이용하라”고 권유했다고 전해진다. 스크린골프는 골프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점을 감안한 발언일 것이다.
 

골프든 스크린골프든 고위 공직자가 휴가에서 자기 돈을 내고 업무와 관계 없이 골프를 친다면 국민들도 그것을 손가락질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공무원이 골프를 친다면 고용도 창출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골프장 경기나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인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기 위해 골프 가방을 끌고 당당하게 공항을 오가는 모습과 공무원이 떳떳하게 ‘접대’와 ‘로비’로부터 자유롭게 라운딩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둘다 골프 치는 사람의 높은 도덕심 여하에 달린 듯하다.

공무원들이 살얼음 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허용한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의 ‘고위 공직자 골프 허용 발언’의 취지를 잘 살려 적어도 이번 여름 휴가기간이라도 골프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으면 싶다.